"우리 냉천마을이 확 살아 불었다". 회관 앞 담벼락 벽화 그림 작업을 보고 서 있던 제주집 이모님이 흡족해 하시며 하시는 말씀이다.
그들은 새벽마다 '진샘'으로 불리우는 그 샘가에서 친구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국 진시황제 사신이 불로초를 구하러 지리산으로 왔을 때 이 샘물로 목을 축였다 하여 냉천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고 있다.
담벼락 벽화 그림 속의 아낙네 무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이건 나, 이건 점순이, 저건 정숙이, 쩌건 인숙이라 하신다.
냉천 이모님들은 금새 70년 전의 풋풋했던 스무 살 모습으로 되돌아가서 아름다웠던 지난 날을 되새기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부터 마을 담벼락에는 홍매가 흐드러지듯 피어나기 시작했다. 한 그루 고목 매화가 함석지붕을 이불 삼아 가지를 마음껏 펼치며 가지 끝마다 붉은 꽃망울을 밝히고 있었다.
그 홍매화 낭구(나무)를 기준으로 좌로는 냉천 농악대가 흥겨운 가락을 울리며 희고 긴 상고를 돌리고, 우편으로는 샘가에서 아낙네들이 물을 긷거나 빨래하며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담소를 나눈다.
아이들은 낮은 담에 머리를 기대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담장 밖 봄바람을 쫓고 있는 상쾌한 담벼락 그림이다.
이름을 날리던 냉천리 농악대는 차쯤 숫자가 적어져 지금은 역전 신촌마을과 같이 팀을 이루고 있다. 간전농악, 용방농악도 있는데 동네마다 정규 인원 30명이 채 안 된다고 하신다.
얼마 전 순천 낙안에서 농악대회가 있었는데 그중 냉천 농악대가 제일 잘했지만, 참여 인원수가 부족해서 2등을 받았다며 안타까워 하셨다.
10. 2일 노인의날에도 노인 노래자랑이 있는데 갈 사람이 없다고 마을 대표선수를 걱정하고 계시는 냉천 이모님들이시다.
"그나저나 너무 사람이 없어, 애기 울음소리 들어본 지 언제인가 싶고, 배부른 사람을 못 본 지도 오래되었다"고 하신다.
인근에서는 제일 큰 300여 호의 마을에서 탄생의 일성을 터트리는 아이 울음소리가 끊긴 지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담벼락 그림에서나 아이들을 볼 수 있다니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옛날에도 지금도 남녀는 부동석인데 그림 벽화도 부동석이다. 아낙네와 예쁜 각시들은 샘가나 냇가에서 놀고 남정네들은 따로의 공간에서 놀고 계신다.
냉천마을 담벼락 벽화 그리기는 전라남도의 핵심시책 '청정전남 으뜸마을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구례군 90개 마을이 참여하는 △마을 진입로 꽃길 조성 △화단 가꾸기 △마을 안길 벽화 그리기 △쓰레기 분리수거함 설치 △LED 조명 설치 △특색있는 문패와 우체통 제작 등 쾌적하고 살기 좋은 마을로 바꿔나가고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는 사업 중의 하나이다.
노인정 창문가에 기대서서 "매화꽃이 참말로 이쁘다" 말씀하시는 냉천 이모님의 얼굴에 모처럼 봄빛이 찾아왔다. 벽화 그림 한 점이 마을 분위기를 확 바꿔 살아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매일 같이 노인정 문은 열렸으나 샘가 친구였던 친구들은 다 모이지 못했다. 정숙 이모는 병원 가셨고, 인숙 어머니는 집에서 출타치 않으셨다. 농악대 숫자가 줄듯 노인정 숫자도 점차 줄어들고 매화꽃만 저만치 피어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농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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